호남문화 연구총서
[연구총서 15]광산거의록
작성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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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7 17:35
(수정일: 2023-09-26 16:56)
[연구총서 15]광산거의록
저자명 光州儒林 편찬, 신해진 역
출판사 경인문화사
발행일 2012. 07. 25
목차
《양호거의록》의 모본인《광산거의록》을 번역한 것으로, 정묘호란 당시 광주 의병 기록을 살펴볼 수 있는 책.빛고을 광주는 흔히 ‘예향’ 못지않게 ‘의향(義鄕)’이라고 일컬어진다. 그것은 아마도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안위는 생각지 않고 스스로 떨치고 일어난 사적이 많았음을 이르는 것이리라. 불의를 보면 항거하는 것이야 어느 지역엔들 없었으랴마는, 타 지역보다도 도드라졌음을 일컫는 것일 게다.
그 의향의 발자취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왜냐하면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나의 선조 신흘(申?, 1550∼1614)이 영남 의병장들에게 연합전선을 펼치자며 돌린 편지가 조경남(趙慶男)의 ≪난중잡록(亂中雜錄)≫에 익명의 서신으로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영호남의 사적들을 발굴하여 비교해 보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리라는 기대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래서 문헌들을 살펴보았더니, 왜란과 관련된 글은 비교적 많이 번역 소개되었지만, 호란과 관련된 글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에, 경북 의성 지역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끈 의병장의 기록인 『역주 창의록』(역락, 2009)을 번역 소개한 바 있는데, 의병장 신적도(申適道, 1574∼1663)는 바로 신흘의 아들이자 나의 파조(派祖)이시다. 이와 필적할 만한 호남 자료를 찾던 중, ≪양호거의록(兩湖擧義錄)≫이 정묘호란 당시 양호 지역에서의 의병활동을 기록하고 있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양호거의록≫은 1798년에 발간된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이본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특히, ‘정묘거의록’이란 제명의 이본보다는 ‘양호거의록’이란 제명의 이본이 많은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들 거의록은 모두 송환기(宋煥箕, 1728∼1807)가 쓴 서문을 수록하고 있는데, 그 서문에 따르면 1760년에 간행된 ≪광산거의록≫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송환기의 서문은 번역하여 이 책의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게다가 이들 거의록은 ≪광산거의록≫에 붙인 것으로 짐작되는 김시찬(金時粲, 1700∼1767)의 서문을 송환기의 서문 다음에 수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호거의록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자들이 언급하고 있었던 반면, 그 모본인 광산거의록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연원지학(淵源之學)을 연마하는 나로서는 ≪광산거의록≫을 찾고 싶었다. 그리하여 꽤 오랜 기간 틈나는 대로 찾은 결과, 지난 4월 초순에 우연히 이웃 대학인 조선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음을 알았다. 복사물을 받고 나니, 바로 찾고 싶어 하던 것이어서 심장의 박동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멍하니 있을 수만 없어 곧바로 역주를 하여 상재하는 바이니, 대방가의 질정을 청한다.
≪광산거의록(光山擧義錄)≫은 1책으로 말미에 ‘崇禎紀元後, 三辛巳, 孟冬刊出.’이라 되어 있으니, 곧 1761년 겨울에 간행되었다. 발행의 주체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당시 광산유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문은 말미에 ‘崇禎紀元後, 三庚辰, 安東金時粲謹序.’로 되어 있는 바, 김시찬이 1760년에 지은 것이다. 현재 조선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광산거의록≫의 발굴은 정묘호란 당시 의병활동에 대한
기록물의 연변과정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고, 그 최초의 토대와 뼈대에 대한 원형을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매우 귀중한 자료를 기꺼이 영인하도록 승인하여 주신 조선대학교 도서관 류찬수 관장님 및 관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이다. 그리고 이 책을 호남문화 연구총서로 간행케 해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원장 김신중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끝으로 편집을 맡아 수고해 주신 경인문화사 가족들의 노고에도 심심한 고마움을 표한다.
2012년 5월
빛고을 용봉골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신해진 謹識
목차
머리말/
일러두기/
서序·범례凡例
서·김시찬 / 13
序·金時粲 16
범례 / 21
凡例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