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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그리고 투쟁의 기억 :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선언, 22인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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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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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7 21:00
(수정일: 2023-09-09 19:32)
<선언> 그리고 투쟁의 기억 : 1978년 <우리의 교육지표>선언, 22인의 회고
저자명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단; <우리의 교육지표>선언기념사업추진위원회 편
출판사 엔터
발행일 2008. 06. 27
목차
연구진은 이 책의 구성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부분은 1978년 6월 27일 비민주적인 교육정책과 유신체제를 비판하면서 학원의 민주화와 민주교육 실현을 위해 <우리의 교육지표>를 작성한 백낙청 교수님과 선언문 발표에 동참하신 전남대학교 열 분 교수님들의 경험에 관한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당시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이 발표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열 분의 경험과 이 사건에 대한 개인적 평가 및 역사적 의의를 담는 데에 충실했다. 다만, 이미 타계하신 이방기 교수님과 명노근 교수님에 관한 부분은 생존 시 구술했던 자료들을 편집하였고, 배영남 교수님에 관한 부분은 10분 교수님들과 학생들의 구술 내용을 연구진이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또한 대학을 서울로 옮겨가신 김두진 교수님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구술이 어려워 이 책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교수님과의 연락 과정에서 다른 10분의 교수님들과 큰 틀에서 인식과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었음을 알려둔다.두 번 째 부분에서는 <우리의 교육지표>선언 이후 11분의 교수님이 연행, 강제해직 됨에 따라 이에 격분해 학생들이 6월 28일부터 7월 3일까지 대규모 시위를 펼쳐 제적, 구속되는데, 이 학생들 중 11명의 경험을 구술로 채록ㆍ정리 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발발하게 된 경위와 과정을 담아내기 위해서 11명의 경험을 일시, 시간, 장소별로 순차적으로 정리하여 장을 구성하였다. 또한 ‘교육지표 사건’ 이후의 활동에도 초점을 맞추어 서술함으로써 이 사건이 향후 민주화 운동의 시금석이 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11명의 학생들 중 먼저 타계한 노준현님에 관한 부분은 기존의 구술 자료를 기반으로 재구성하였고, 박석삼ㆍ이영송님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구술이 어려워 본인이 작성해 보내주신 글을 전달받아 책의 구성에 맞게 편집하였다.
발간사
목차
서문
일러두기
1. 1978년 6월 27일 서명 교수 11인, <선언>의 기억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것이지 김정수 - 17
민주화의 횃불 당기게 한 불씨 김현곤-23
대학 자율성 · 정의 · 민주화 향한 첫 걸음 명노근-31
스승의 도리가 '용기' 주었지 배영남 - 39
교육은 교수의 '인격'을 통해 살아있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송기숙 -45
암흑시대에 촛불을 켜는 마음으로 안진오 - 75
숨막히는 상황, 발언이 필요했어 이방기 - 83
교육의 본질은 비판의식 양성 이석연 89
지식인의 지적 고백 : 인간이 어떻게 정의없이 살아 갈 수 있겠는가? 이홍길 - 99
역사 속의 교육지표사건: 30주년에 즈음하여 돌아보는 글 홍승기 - 121
타대학 실패했어도 전남대는 결행 백낙청 - 139
2. 1978년 6월 27일~<선언> 이후, 투쟁의 기억
연쇄폭발처럼 이어진 <선언> 지지 투쟁 김상윤 - 151
민주투쟁의 싹을 틔운 귀한 씨앗 윤한봉 - 161
교수님들 용기가 민주화 맥으로 이어져 김경천 - 171
민중과 정의는 항상 함께 한다 이영송 - 179
전남대 토양이 길러낸 저항의식 정용화 - 195
<선언> 지지시위 당찬 투쟁으로 발전 노준현 - 203
학생운동 장작불에 기름 끼얹었죠 김선출 - 211
5·18민주화운동의 사상적 자양분 제공 신일섭 - 221
80년대 연대투쟁의 길 열었죠 문승훈-227
이후 투쟁 가능케한 귀한 경험이었죠 박석삼 - 241
조선대 학생운동 촉발의 계기로 작용 박형중 - 251
부록
자료로 본 <우리의 교육지표> 선언 - 260
교육지표 사건 일지 - 288
민주교육지표 · 노둣돌 연락처 - 296